1장
1절『 Συμεὼν Πέτρος δοῦλος καὶ ἀπόστολος Ἰησοῦ Χριστοῦ τοῖς ἰσότιμον ἡμῖν λαχοῦσιν πίστιν ἐν δικαιοσύνῃ τοῦ Θεοῦ ἡμῶν καὶ Σωτῆρος Ἰησοῦ Χριστοῦ· 』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며 사도인 시몬 베드로는 우리 하나님과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힘입어 동일하게 보배로운 믿음을 우리와 함께
받은 자들에게 편지하노니』 (개역개정)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며 사도인 시몬 베드로는 우리의 하나님과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통해 우리와 함께 동일하게 보배로운 믿음을 얻은 자들에게 편지하노니』(헬라어 번역성경)
베드로전서의 주제는 그리스도의 수난과 같이
성도도 그리스도를 전하기 위해 힘든 여정이지만 수난을 이겨내야 한다는 말씀이 주된 내용이었다. 베드로후서의
주제는 하나님을 아는 관계(에피 그노세이)를 나타내고, 종이며 사도된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권면된 내용이다.
편지를 받는 사람들에게 표현하기를 『동일하게 보배로운(이소티몬 ἰσότιμον) 믿음(피스틴 πίστιν)을 우리와(혜민ἡμῖν) 함께 받은(라쿠신 λαχοῦσιν) 자들이라』고 했다. 베드로가 수신자에게 같은 믿음을 소유한 자에게 보내는 편지라는 것이다. 피스틴은 보배로운 믿음이 아니라 그냥 믿음이다. 믿음은 하나님과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힘입어 얻어진 믿음이다.
2절『 χάρις ὑμῖν καὶ εἰρήνη πληθυνθείη ἐν ἐπιγνώσει τοῦ Θεοῦ καὶ Ἰησοῦ τοῦ Κυρίου ἡμῶν. 』
『하나님과 우리 주 예수를 앎으로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더욱 많을지어다』(개역개정)
『하나님과 우리 주
예수를 아는 관계 안에서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더욱 많이 있을 지어다』(헬라어 번역성경)
에피(강조) 그노세이(알다)(ἐπιγνώσει) 에서, 알다라는
말은 히브리어 야다로서 서로 관계로 하나가 되어 아는 것을 의미한다. 『하나님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와
관계를 맺어 아는 그 관계 안에서』플레뒨데이에(πληθυνθείη)는 성령 세례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 세례를 받은 후, 하나님의 상속자가 되는 은혜가 주어지는데, 그 은혜를 받는 것을 의미한다.
3절『 Ὡς τὰ πάντα ἡμῖν τῆς θείας δυνάμεως αὐτοῦ τὰ πρὸς ζωὴν καὶ εὐσέβειαν δεδωρημένης διὰ τῆς ἐπιγνώσεως τοῦ καλέσαντος ἡμᾶς ἰδίᾳ δόξῃ καὶ ἀρετῇ,』
『그의 신기한 능력으로 생명과 경건에 속한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셨으니 이는 자기의 영광과
덕으로써 우리를 부르신 이를 앎으로 말미암음이라』 (개역개정)
『그가 영광과 탁월함을 통하여
우리를 부르사 그를 아는 관계를 통해 그 분의 신적인 능력과 생명과 하나님의 신성에 속한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셨도다』 (헬라어 번역성경)
테스 데이아스 뒤나메오스(τῆς θείας δυνάμεως) 는 그의 신적인 능력의 라는 의미다. 생명과 경건에 속한 신적인 능력이다. 이 신적인 능력은 우리를 부르신 이를 앎으로 라고 번역되었는데, 온전한
지식을 통하여(디아 테스 에피그노세오스 διὰ τῆς ἐπιγνώσεως:하나님과 하나가 되는
관계) 신적 능력을 주신다. 아레테는 탁월함을 의미한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실제로 하나님의 생명에 관한 능력을 주시고, 그
능력을 통해서 세상을 구원하시겠다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가 성도 안에서 역사하실 때 그 능력이 나타난다. 신기한 능력은 신성을 의미하는데, 어떤 사람들은 신성을 받았다고
말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잘못 이해하고, 신비주의에 빠져서
오히려 영지주의에 빠지는 그런 경우도 있다. 은사로 역사하시는 분은 그리스도이시다. 그런데, 그런 은사를 받은 사람이 자기가 은사의 주체인 것처럼 행동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단이 생기는 것이다.
4절『 δι’ ὧν τὰ τίμια καὶ μέγιστα ἡμῖν ἐπαγγέλματα δεδώρηται,
ἵνα
διὰ
τούτων γένησθε θείας κοινωνοὶ φύσεως, ἀποφυγόντες τῆς ἐν τῷ κόσμῳ ἐν ἐπιθυμίᾳ φθορᾶς. 』
『이로써 그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을 우리에게 주사 이 약속으로 말미암아 너희가 정욕 때문에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피하여 신성한 성품에 참여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하셨느니라』 (개역개정)
『그것들로 말미암아 지극히 크고 보배로운 약속들이 우리에게 주어졌나니 너희가
이 약속들을 힘입어 세상에 있는 썩을 욕망을 피하며 하나님의 신성에 참여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함이라』 (헬라어 번역성경)
에팡켈마타(ἐπαγγέλματα) 는 약속인데, 하나님
나라를 상속으로 주시려는 약속이다. 『데이아스(신) 코이노노이(참여하다) 퓌세오스(본성) θείας κοινωνοὶ φύσεως 』는 신의 성품에 참여하는 것이 아니라 신의 본성(신성)에 참여하는 것으로 수정되어야 한다.
신의 성품은 마치 인격적 의미를 나타내지만, 신성은 하나님의
능력 그 자체이시다.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과 하나가 되면 성도가 하나님의 신성에 참여하는 자가 되는
것이다. 성품은 변하는 모습이지만, 신성은 절대 변하지 않는
모습이다. 그래서 교회 목사들 중에는 신의 성품을 하나님의 형상으로 연결해서 말하는 이들도 있다. 신성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지는데, 그들은 신의 성품(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식으로 말하는 것이다.
5-7절『 καὶ αὐτὸ τοῦτο δὲ σπουδὴν πᾶσαν παρεισενέγκαντες ἐπιχορηγήσατε ἐν τῇ πίστει ὑμῶν τὴν ἀρετήν, ἐν δὲ τῇ ἀρετῇ τὴν γνῶσιν, ἐν δὲ τῇ γνώσει τὴν ἐγκράτειαν, ἐν δὲ τῇ ἐγκρατείᾳ τὴν ὑπομονήν, ἐν δὲ τῇ ὑπομονῇ τὴν εὐσέβειαν, ἐν δὲ τῇ εὐσεβείᾳ τὴν φιλαδελφίαν, ἐν δὲ τῇ φιλαδελφίᾳ τὴν ἀγάπην.』
『그러므로 너희가 더욱 힘써 너희 믿음에 덕을, 덕에 지식을, 지식에 절제를, 절제에 인내를, 인내에
경건을, 경건에 형제 우애를, 형제 우애에 사랑을 더하라』(개역개정)
『이것과 더불어 열망을 통하여 너희의 믿음에 덕이 덕에 지식이 지식에 절제가
절제에 인내가 인내에 경건이 경건에 형제 우애가 형제 우애에 사랑이 더하여 주어지게 되느니라』(헬라어 번역성경)
스푸덴(σπουδὴν)은 열망으로서, 신성에 참여하는 열망을 의미한다.
여기에는 여덟가지 덕목이 등장하는데, 마치 단계적으로 이루어져야 하는 것처럼 되어 있으나, 믿음 안에
덕이 있고, 덕 안에 지식이 있고, 지식 안에 절제가 있으며, 절제 안에 인내가 있고, 인내 안에 경건이 있고, 경건 안에 형제 우애가 있으며, 형제 우애 안에 사랑이 있다는 말이다. 우리말 번역에서,『더하라』는 말이 『노력하라:make every effort to add』는 말로 영어성경(niv)에는
번역되었다. 물론 킹제임스 번역은 『주어진다(giving)』로
되어있으며, 헬라어 원문에는παρεισενέγκαντες(파레이세넹칸테스:적용하다) ἐπιχορηγήσατε(에피코레게사테:주다)』(여덟가지 덕목이) 주어지고
적용된다는 것이다.
이것은 인간의 노력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하나가
될 때, 신성이 이 같은 모습으로 나타난다고 말을 하는 것이다. 믿음을
통해서 덕(탁월함)이 생겨나고, 지식(하나님과의 하나되는 관계)을
통하여 은사를 받게되고, 그래서 사람이 교만해질 수 있다. 그것을
깨닫는 자는 절제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인내(휘포모네)로 연결된다. 휘포모네는 주님의 보좌에 머무는 것이다. 그래서 경건(유세베이안: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된다. 그래서 형제사랑과 아가페 사랑이 이루어진다.
8-9절『 ταῦτα γὰρ ὑμῖν ὑπάρχοντα καὶ πλεονάζοντα οὐκ ἀργοὺς οὐδὲ ἀκάρπους καθίστησιν εἰς τὴν τοῦ Κυρίου ἡμῶν Ἰησοῦ Χριστοῦ ἐπίγνωσιν· ᾧ γὰρ μὴ πάρεστιν ταῦτα, τυφλός ἐστιν μυωπάζων, λήθην
λαβὼν
τοῦ
καθαρισμοῦ τῶν πάλαι αὐτοῦ ἁμαρτιῶν. 』
『이런 것이 너희에게 있어 흡족한즉 너희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알기에 게으르지 않고 열매 없는
자가 되지 않게 하려니와 이런 것이 없는 자는 맹인이라 멀리 보지 못하고 그의 옛 죄가 깨끗하게 된 것을 잊었느니라』 (개역개정)
『이것들이 너희 안에 있어 풍성하면 그것들이 너희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에서 빈약하지 않고 열매를 맺지 못하는 자가 되지 아니하게 하려니와 이것들이 없는 자는 눈먼 자요 멀리 내다 볼 수 없는 자며 자기의 옛
죄들이 깨끗하게 된 것을 잊은 자니라』(헬라어 번역성경)
위의 내적인 여덟가지의 덕목이 외적으로 성령의 아홉가지 열매로
나타난다. 이런 것이 없는 자는 하나님의 신성에 참여하지 않은 자를 의미한다. 성령을 받지 않으므로, 그래서 하나님 나라를 보지 못하므로 맹인이라는
것이다.
10-11절『διὸ μᾶλλον, ἀδελφοί, σπουδάσατε
βεβαίαν ὑμῶν τὴν κλῆσιν καὶ ἐκλογὴν ποιεῖσθαι· ταῦτα γὰρ ποιοῦντες οὐ μὴ πταίσητέ ποτε. οὕτως γὰρ πλουσίως ἐπιχορηγηθήσεται ὑμῖν ἡ εἴσοδος εἰς τὴν αἰώνιον βασιλείαν τοῦ Κυρίου ἡμῶν καὶ Σωτῆρος Ἰησοῦ Χριστοῦ』
『그러므로 형제들아 더욱 힘써 너희 부르심과 택하심을 굳게 하라 너희가 이것을 행한즉 언제든지 실족하지
아니하리라 이같이 하면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한 나라에 들어감을 넉넉히 너희에게 주시리라』(개역개정)
『그러므로 형제들아 더욱 열심을 내어 너희를 부르심과 택하신 것을 확실하게
하라 너희가 이것들을 행하면 결코 넘어지지 아니하리니 이렇게 구원자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한 나라에 들어감을 주께서 너희에게 풍성히
베푸시리라』(헬라어 번역성경)
스푸다사테(σπουδάσατε)는 열심을 내라는 의미이고, 베바이안(βεβαίαν)은 확실하게 라는 의미이다. 포이에이스다이 (ποιεῖσθαι)는 행하도록 이라는
의미다. 부르심은 교회로 인도되어 오는 것이고, 택하심은
하나님의 백성으로 인을 친 자라는 것이다. 모두가 다 하나님 나라 백성이 된 것은 아니다. 부르심을 입은 자들은 언제든지 실족할 수 있다. 왜냐하면 그들은
성령으로 거듭나지 않으므로, 신성에 참여하지 못한 자들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부르심을 입은 자들은 택함을 얻기 위해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되어 육신으로는 십자가에서 죽은 자가 되고, 영으로는 성령의 능력으로 부활하여 하나님을 바라보는 자가 되는 것이다.
12절『 Διὸ μελλήσω ἀεὶ ὑμᾶς ὑπομιμνῄσκειν περὶ τούτων, καίπερ εἰδότας καὶ ἐστηριγμένους ἐν τῇ παρούσῃ ἀληθείᾳ 』
『그러므로 너희가 이것을 알고 이미 있는 진리에 서 있으나 내가 항상 너희에게 생각나게 하려 하노라』(개역개정)
『그러므로 비록 너희가 이것들을 알고 있고 지금 진리에 굳게 서 있을지라도
너희가 항상 그것들을 기억하도록 내가 행하려 하노라』(헬라어 번역성경)
멜레소(μελλήσω)는 나는 하려고 할 것이다 라는 의미다. 이미 알고 있는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는 그리스도께서 성도 안에 함께 있음을 알고 있지 않느냐 라는 말이다.
13-14절『 δίκαιον δὲ ἡγοῦμαι, ἐφ’ ὅσον εἰμὶ ἐν τούτῳ τῷ σκηνώματι,
διεγείρειν ὑμᾶς ἐν ὑπομνήσει, εἰδὼς ὅτι ταχινή ἐστιν ἡ ἀπόθεσις τοῦ σκηνώματός μου, καθὼς καὶ ὁ Κύριος ἡμῶν Ἰησοῦς Χριστὸς ἐδήλωσέν μοι 』
『내가 이 장막에 있을 동안에 너희를 일깨워 생각나게 함이 옳은 줄로 여기노니 이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게 지시하신 것 같이 나도 나의 장막을 벗어날 것이 임박한 줄을 앎이라』 (개역개정)
『참으로 내가 이 장막에 있는 동안에 너희를 기억하게 일깨우는 것이 합당한
줄로 생각하노니 이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게 알려주신 것 같이 내가 머지 않아 이 장막을 벗어야 할 줄 알기 때문이라』(헬라어 번역성경)
스케노마티(σκηνώματι) 는 육체를 의미한다. 베드로가
죽을 날이 얼마남지 않은 것을 시사하는 것이다. 육의 장막을 벗어나면 영의 몸(장막)을 입게 된다. 사도바울도
고린도후서에서 장막이라는 표현을 했다. 베드로가 일깨워주려고 하는 것은 성도 안에 그리스도가 함께 하는
것이다. 에델로신(ἐδήλωσέν)은 알리다 라는 말이다.
15-16절『 σπουδάσω δὲ καὶ ἑκάστοτε ἔχειν ὑμᾶς μετὰ τὴν ἐμὴν ἔξοδον τὴν τούτων μνήμην ποιεῖσθαι. οὐ γὰρ σεσοφισμένοις
μύθοις ἐξακολουθήσαντες ἐγνωρίσαμεν ὑμῖν τὴν τοῦ Κυρίου ἡμῶν Ἰησοῦ Χριστοῦ δύναμιν καὶ παρουσίαν, ἀλλ’ ἐπόπται γενηθέντες τῆς ἐκείνου μεγαλειότητος. 』
『내가 힘써 너희로 하여금 내가 떠난 후에라도 어느 때나 이런 것을 생각나게 하려 하노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과 강림하심을 너희에게 알게 한 것이 교묘히 만든 이야기를 따른 것이 아니요 우리는 그의 크신 위엄을 친히 본 자라』(개역개정)
『또한 내가 떠난 뒤에도 너희가 항상 이것들을 기억할 수 있도록 서두르리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권능과 임재를 알려줄 때에 우리가 너희에게 교묘히 지어낸 이야기를 따른 것이 아니요 우리는 그 분의 위엄을 눈으로 본 자들이니라』(헬라어 번역성경)
파루시안(παρουσίαν)은 예수의 강림이 아니라, 옆에
계시는 것을 의미한다. 즉 성도 안에 그리스도의 임재를 말한다. 그의
크신 위엄을 본 것은 베드로가 요한, 야고보와 함께 변화산에서 모세와 엘리야와 대화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몸이 빛처럼 빛나는 변화의 광경을 목격한 것을 의미한다. 뒤나민(δύναμιν)은 능력, 권능이다.
17절『 λαβὼν γὰρ παρὰ Θεοῦ Πατρὸς τιμὴν καὶ δόξαν φωνῆς ἐνεχθείσης αὐτῷ τοιᾶσδε ὑπὸ τῆς μεγαλοπρεποῦς δόξης Ὁ Υἱός μου ὁ ἀγαπητός μου οὗτός ἐστιν, εἰς ὃν ἐγὼ εὐδόκησα 』
『지극히 큰 영광 중에서 이러한 소리가 그에게 나기를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실 때에 그가 하나님 아버지께 존귀와 영광을 받으셨느니라』(개역개정)
『지극히 큰 영광으로부터 한 음성이 그 분께 나서 이르기를 이 사람은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그를
매우 기뻐하노라 하실 때에 그 분께서 하나님 아버지로부터 존귀와 영광을 받으셨느니라』(헬라어 번역성경)
이런 놀라운 광경을 베드로가 목격했는데, 바로 이것이 성도
안에서 임재하는 파루시안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18절『καὶ ταύτην τὴν φωνὴν ἡμεῖς ἠκούσαμεν ἐξ οὐρανοῦ ἐνεχθεῖσαν σὺν αὐτῷ ὄντες ἐν τῷ ἁγίῳ ὄρει 』
『이 소리는 우리가 그와 함께 거룩한 산에 있을 때에 하늘로부터 난 것을 들은 것이라』(개역개정)
『이 음성은 우리가 그 분과 함께 거룩한 산에 있을 때에 하늘로 부터 들은 것이니라』(헬라어 번역성경)
베드로는 하나님의 임재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음성도 들었다는
것이다. 베드로는 성도에게 그리스도가 임재했을 때,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과 연결시키려고 하는 것이다.
19절『καὶ ἔχομεν βεβαιότερον τὸν προφητικὸν λόγον, ᾧ καλῶς ποιεῖτε προσέχοντες ὡς λύχνῳ φαίνοντι ἐν αὐχμηρῷ τόπῳ, ἕως οὗ ἡμέρα διαυγάσῃ καὶ φωσφόρος ἀνατείλῃ ἐν ταῖς καρδίαις ὑμῶν·』
『또 우리에게는 더 확실한 예언이 있어 어두운 데를 비추는 등불과 같으니 날이 새어 샛별이 너희 마음에
떠오르기까지 너희가 이것을 주의하는 것이 옳으니라』(개역개정)
『또 우리에게 더 확실한 예언의 말씀이 있어 어두움 안에서 빛나는 등불과
같으니 날이 새어 샛별이 너희 마음 속에 떠오를 때까지 너희가 이 말씀에 주의를 기울이는 것이 잘하는 것이니라』(헬라어 번역성경)
확실한 예언은 그리스도께서 성도 안에 계셔서 그의 말씀에 순종할 때 성도는 그의 음성을 들을 수 있다는
것이다. 엘리야가 세밀한 주의
음성을 들은 것처럼 성도도 그렇게 되는 것이다. 어둠에서 비추는 등불처럼, 밤을 지나 새벽의 여명에 빛나는 샛별처럼, 성도의 마음이 그러할
때, 간절히 기도하는 가운데, 하나님의 음성이 이렇게 들려온다는
것이다. 베드로가 이렇게 말할 때, 성도들은 전도에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의 음성을 주의해서 들으라는 것이다. 샛별(하나님의 음성)이
마음에 떠오른다는 것은 주의 음성이 마음에 감동되어 떠 오르는 것이다. 베드로는 주의하라고 했다. 마귀의 음성인지 하나님의 음성인지 분별하라는 것이다. 마음에 떠오르는
하나님의 음성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 성령의 마음으로 성경을 바탕으로 접근하라는 것이다.
20-21절『 τοῦτο πρῶτον γινώσκοντες, ὅτι πᾶσα προφητεία γραφῆς ἰδίας ἐπιλύσεως οὐ
γίνεται· οὐ γὰρ θελήματι ἀνθρώπου ἠνέχθη προφητεία ποτέ, ἀλλὰ ὑπὸ Πνεύματος Ἁγίου φερόμενοι ἐλάλησαν ἀπὸ Θεοῦ ἄνθρωποι 』
『먼저 알 것은 성경의 모든 예언은 사사로이 풀 것이 아니니 예언은 언제든지 사람의 뜻으로 낸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의 감동하심을 받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임이라』(개역개정)
『먼저 이것을 알라 성경의 예언 중 어떤 것도 사적인 해석에서 나지 아니하였나니 예언은 언제든지 사람의
뜻으로 말미암아 나오지 아니하였고 오직 거룩하신 성령의 감동하심으로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사람들이 말한 것임이라』(헬라어 번역성경)
성경은 해석하는 사람마다 다르게 해석되어지고 있다. 그
이유는 성경을 교리적으로 해석하기도 하고, 인본주의 영지주의, 율법주의
사상을 바탕으로 해석하는 경우도 있고, 잘못된 번역 본으로 해석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성경이 작성되었을 때의 원어를 바탕으로
해석되어야 하고, 복음주의를 바탕으로 하고, 교리가 아니라, 말씀이신 호 로고스(예수 그리스도)
중심으로 해석해야만 하는 것이다. 사사로이 푼다는 것은 인간중심의 인본주의를 따라 해석하는 것이다. 성령의 감동을 받아서 쓴 성경은 성령의 감동으로 해석해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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